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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뽑혀 나온 단검의 빛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나는 피식 웃고는 단검을
다시 찔러 넣었다.
무기가 있어도, 나는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사실. 사실이다. 빼도 박지도 못하는 사실.
현재의 상황에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이, 그저 방해만 되지 않는 것이 돕는 존
재이다.
아까 집어넣은 단검은, 어쩐지 내 가슴을 찌른 것 같다.
왜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는 느낌이 드는 걸까?
한참동안 가슴을 쥐고 생각하던 도중, 갑자기 그 이유가 떠올랐다. 나조차도 잠
시 잊고 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필요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내 자신을 제대로 느끼면서, 나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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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필요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필요 있어짐으로 해서 나를 느낄 수 있다.
최초의 여행을 떠났던 이유. 내 자신을 억압하는 것이 뭔지 알기 위해서다. 그것
을 깨닫고, 나를 완성하여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기 위해서였다.
상황에 순응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억압하고 억제하는 상황을
따르기가 싫었다. 교육제도, 사회, 학교….
지금 나는 상황에 순응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상황에서 물러나려 한다. 그것은 내가 학교에서, 집에서, 학원에서 반복했던 일시
적인 도피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사태가 위험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어떤 호의적이지 않은 집단이 우릴 공
격하려 한다는 것도 안다. 모두들 전투태세를 취하는 것도, 눈에 힘이 들어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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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설 수 있는가?
두두두두두두두!
무수한 말발굽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점점 이름 모를 그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움직여서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보았다.
많은 말 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갈색 가죽을 걸치고는, 석양빛을 받아 번뜩
이는 핏빛을 손에 들고 있었다. 명백한 적의가 담긴 칼이었다.
“최종 경계! 화살에 주의하라!”
주술사의 말이 끝마치자마자 달려오는 사람들 사이로 무수한 화살이 쏘아지기 시
작했다. 말을 타고서도 활을 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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