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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니만큼 장난스러운 대답은 할 수 없다.

난 목소리를 낮추면서 음산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네 목숨이 가고 싶은 길. 어떻게 가고 싶지?”

아란의 고개가 다시 숙여졌다.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너무 의외라서 그런 걸까?

그런데 아란의 머리를 좀 더 낮게 숙여졌다. 고개를 숙이는 정도가 아닌, 상체를

숙이고 이마를 땅에 댈 때까지 천천히 숙였다. 이윽고 땅에 이마를 가져다 댄 아

란은 그런 불편한 자세에서도 똑바로 외쳤다.

“노예로 받아주십시오!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굴복선언이었다.

나에게, 율법에, 죽음의 두려움에 굴복하는 목소리였다.

스스로가 하찮은 존재가 되겠다고 자진해서 외치는 소리.

복수심이 가득 쌓여있는 마음을 한꺼번에 충족시키는 상쾌한 말이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받아줘서는 안 된다. 조금 더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에게 인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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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로서 더욱 더 심하게 굴복시키고, 굴욕감을 안겨줘야

한다.

나는 딱딱한 어조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진심인가?

“진심입니다!”

“너 자신의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내게 예속되겠다는 건가?”

“예!”

“아무리 힘들어도 내 명령 없인 쉴 수 없고, 죽기 직전까지 굶주려도 내 명령 없

인 먹을 수 없고, 네가 할 수 있는 건 생각이 아닌 행동 뿐. 그런 삶이라도 살아

가길 원하는가?”

“원합니다! 당신의 노예가 되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죽이라면 죽이겠습니다!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겠습니다! 무슨 말이든 따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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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가 되겠습니다!”

아란의 음성은 절실함이 잔뜩 배어나와 있었다.

그만큼 살고 싶은 것일까? 그렇게 해서 구차한 목숨을 이어가고 싶은 걸까? 음흉

한 계략으로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목숨을, 어떤 꼴을 당할지 알 수도 없으면서도

살아가려는 건가?

아니지. 이게 부슨 병신 같은 생각이람?

나는 아란을 비웃던 내 생각을 도로 비웃었다.

어떻게 사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장 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생

존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존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옳은 일이다.

아란의 엎드린 모습은, 어쩐지 수파네에게 저항하려던 나와 같게 생각된다. 겉보

기의 상황은 다르지만, 그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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